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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인생 근황

풍차돌 2023.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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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대한민국의 배우 김미숙은 어린 시절 혼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을 정도로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사고하기 시작할 때부터 배우를 소망했다고 하지만, 공부를 모두 마칠 때까지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역 배우는 포기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큰 키와 마른 체형 때문에 중학교 때

배구 선수로 활약했는데, 포지션은 새터 그래서 손힘이 굉장히 센 편입니다. 그러나 함께 작품하는 배우들이 뺨 맞는 연기를 할 때마다 두려워한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또한 드라마 '기분 좋은 날' 9회 초반에 급종 진문제로 손창민이 깐죽대자 뺨을 때렸는데, 손창민 왼쪽 뺨에 손자국이 선명했습니다.

1978년 미스 롯데 선발 대회에 출전했는데, 1차 예선을 통과하고는 맹장염이 터져 버렸습니다. 상태가 악화되어 복막염 수술까지 받고도 몰래 병원을 탈출해 붕대를 감고 2차 시험을 보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결과는 폐일했습니다. 그러나 대회 당시 김미숙을 눈 여겨봤던 광고주에 의해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곧바로 79년에 KBS 공채 6기로 합격하며 배우 인생 시작이죠.

동시대 활동하던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특유의 고상하고 우아한 분위기와 그 이미지에 맞는 연기력으로 1980년대에 톱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성

장합니다. 데뷔 1년 만인 80년에 KBS 주간 놈 드라마 '동심초'에서 주연을 맡아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특이한 사항은 또래의 여배우들과 달리 이 시기에 영화 출연이 거의 없다는 것인데, 롯데시네마가 만연하던 1980년대 영화계가 본인과 맞지 않다고 느껴 90년대 이후부터는 TV를 위주로 활동했다고 김미숙은 밝혔습니다.

KBS에서 주연급 탤런트로 활동하면서, 80년대 후반에는 김혜자, 고두심 다음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김미숙은 연기 인생 또 하나의 큰 터닝 포인트인 '마라톤'과 '세븐데이즈'에 출연하여 성공적으로 제기합니다. 각각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선방하는데, 특히 '세븐데이즈'에서의 서늘한 연기가 압권입니다. 그리고 2009년 연기 인생 처음에 악역이라 일컫는 찬란한 유산으로 드라마에서의 제 2의 전성기를 맞습니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가족 애와 성장 드라마를 짬뽕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 40%를 넘기며 큰 히트를 기록합니다. 여기서 김미숙은 정말 악역을 안 할

것 같은 배우의 얼굴로 징그러울 정도로 현실적인 백성이를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그 해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합니다.

언제나 선하고 호감과는 역할만 하던 김미숙에게는 처음으로 욕을 먹는 경험을 하게 한 작품이라고 했죠. 이때부터 주목할 것이 김미숙이 구축한 독특한 악역 이미지입니다. 김미숙은 악성 루머로 고생을 했지만, 쓰리잡을 하면서 큰 돈을 벌었습니다.1989년에 인터뷰를 통해 돈을 많이 버는 편이라고 밝힌 김미숙씨는 세무서 직원이 마포해에서 내가 세금을 제일 많이 낸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 달 수입이 천만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시점에서 천만원이라면 감이 잡히지 않을 수도 있겠죠. 김미숙씨의 남동생은 회사에서 월급으로 40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미숙씨는 약 20년간 자신을 쫓아다닌 스

토커 A씨 때문에 오랜 시간 고통 받았습니다. 이 스토커는 남자가 아니라 동성인 30대 여성 스토커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A씨는 김미숙씨가 운영했던 유치원을 찾아와 연락처를 알아냈고, 매일 전화해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미숙씨는 이 일을 겪은 뒤 아이들과 남편을 뉴질랜드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남편과의 별거를 선택하고 기러기 엄마 생활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전에 다른 방송에서도 김미숙씨는 처음에는 팬인 줄 알았다며 스토커에게 잘 대해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있다가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을 때, 그 친구가 스토커였던 것입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나라의 도움을 요청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실제로 A씨는 실형을 선고받아 2년간 수감 생활을 했고, 출소 후에도 스토킹을 계속해 공갈 미수 혐의로 다시 구속됐습니다.

한편 김미숙은 지난 1998년, 5살 연하의 작곡가 겸 음악감독인 최정식씨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라디오에서 DJ와 게스트로 처음 만났습니다. 김미숙의 결혼 생활은 어떨지도 궁금한데, 얼마 전 인터뷰에서 김미숙은 남편을 비즈니스 하듯 대한다고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던 것처럼 혹시 자신의 기분을 안 좋게 해도 최선을 다한다는군요. 그 정도라만 하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좋은 태도인 것 같습니다.

김미숙의 남편 최정식씨는 광고 음악 작곡가입니다. 김미숙이 방송에 출연해서 언급했듯이, 나이 차이는 5살이 나는데, 당시 대배우와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골인한 승리자인

셈이죠. 최정식씨는 진중하면서도 색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는군요.

 

과거 김미숙은 인기 라디오 DJ였고, 최정식씨가 출연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어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결혼까지의 과정은 일반적이지 않고, 특별한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기도 합니다. 보통 남자들이 고백을 하고 여자는 마음이 있더라도 먼저 표현하지 못하고 그 말을 해주기를 바라죠. 하지만 자신의 매력을 알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줄 알던 배우 김미숙은 여자라는 이유로 마냥 다소곳하게 결혼 프로포즈를 기다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에피소드가 상당히 재미있는데, 남편과 지방을 다녀오던 길에 눈이 정말 많이 와서 그런지 최정식씨가 운전을 너무 천천히 하더랍니다. 여자들은 직감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이 힘들고 지쳐서 먼저 결혼하자고 고백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고 하네요. 여자가 먼저 이런 말을 꺼내기 힘든데, 의외로 시원하고 화끈한 성격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미숙의 이런 돌직구 청혼에도 불구하고 남편 최정식씨의 대답은 반전이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너무 빠르십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하네요.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려면 사계절을 겪어봐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후 김미숙의 남편 최정식씨의 말대로 사계절이 지나며 연애를 지속했고, 이듬해 5월 남편으로부터 전화로 프로포즈를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최정식씨는 "한강이 보이느냐?"고 물어보고, "하늘이 보이냐?"고 묻더랍니다. 그리고 "구리 결혼할래요"라고 낭만적인 프로포즈를 했다고 합니다. 39세 늦은 나이에 100년가약을 맺어서 김미숙 이혼이나 재혼 여부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더군요. 하지만 당시가 초본이었으며, 이젠 김미숙의 가정 음악이 아니라 준유선의 가정 음악입니다.

FM 음악방송 "김미숙의 가정 음악"을 지난 5년간 진행했

던 김미숙씨의 마지막 방송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습관처럼 매일 틀어놓으면서 같이 살다시피 하는 프로그램인데, 김미숙씨 마지막 방송이라는 말에 무척 마음이 진했습니다. 5년 동안 한결같이 2시간짜리 생방송 드라마를 찍었다며 너스레를 떠는, 하지만 그 와중에 방송을 내려놓는 아쉬움과 회한의 마음이 김미숙씨의 떨리는 마지막 인사말과 함께 전해지는 듯 해서 또 여러 생각이 겹쳐 지나간다이 마지막 방송을 들으며, 5년 전이 방송을 진행하던 장일범씨에 이어서 김미숙씨가 새롭게 진행을 맡게 된 때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일기장에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각설하고 우리 김미숙 누님은 가정음악 진행자의 자리에 머무르면서 참 많은 사람들에게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쳐왔던 것이 분명하다.

적절한 시기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오랜 머무름의 자리를 떠나면서도 또 많은 사람들에게 여운과 추억 그리고 감동을 남겨주는, 떠난 마저 아름다운 역할을 잘 감당하셨다. 못내 부럽다.

무엇을 하실 거냐는 질문에 더 많이 바빠질 것 같다고 하는데, 제60대 중반 이후에 맡겨진 또 다른 일들도 멋지게 헤쳐나가시리라 믿는다.

앞으로의 일 가운데에서도 지금까지의 좋은 이미지, 선한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그런 연기자로 남아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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