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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경 근황 인생사

풍차돌 2023. 7. 3.

양미경은 1961년 제주에서 태어났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6.25 때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 한쪽 다리를 중상으로 입었던 참전용사였습니다. 비록 몸은 다쳤지만, 자상하고 꼼꼼한 성품으로 모범을 보이셨던 아버지와, 묵묵히 주어진 일만 하시는 분이셨던 어머니를 반반씩 닮은 양미경은 고교 시절부터 시를 좋아해 시집을 즐겨 읽으며 감수성을 키워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학교를 졸업하고 국제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양미경은 설계사무소의 제조사로 이직하여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KBS 앞에서 내리다가 탤런트 공채 모집 공고를 보게 됩니다. 그날은 마침 공채 탤런트 응시의 마지막 접수일이었는데, 생각도 안 해본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양미경은 누구의 권유도 없이 순간적인 선택으로 접수원서를 집어들게 됩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녀를 연기자로 살게 했던 이 순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양미경은 탤런트 시험 당시 거의 백지상태였기 때

문에 면접 때는 앞뒤로 늘씬하고 예쁜 후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화장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멋을 부릴 줄도 몰랐던 숙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많았던 양미경은 최종 면접 때 자신만의 소신 있는 이야기로 독백이나 방백 등 말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됩니다.

당시 면접관이었던 사미자는, 양미경이 그러는 말을 독특하게 생각하며 좋은 점수를 주었고, 결국 탤런트로 뽑

혀 연기자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인시절에는 연기의 연습도 초보였기 때문에 촬영장에서 긴장을 많이 했으며, 연기 경험이 없었지만 대사만이라도 까먹지 않고 완벽하게 해내고자 대본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꾸준히 연습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이후 그녀는 다양한 드라마에서 다나하고 지적인 이미지와 겸허하고 정갈한 한국 여인의 깨끗한 기쁨,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양미경은 어느 날 MBC의 이병훈 PD로부터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의 한 상공로으로 캐스팅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래 한상공격은 대장금에서 최상궁으로 나왔던 견미리에게 맡겨진 역할이었고, 견미리가 했던 최상공력은 원래 배우 송채환이 하기로 했던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다 나중

에 견미리와 송채환의 배역이 서로 바뀌게 되었고, 후에 송치환이 사정이 생겨 대장금에 출연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공석이 된 한상공격의 최종적으로 양미경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상궁을 연기하게 된 양미경은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명품 연기를 선보이며, 중국과 일본, 동남아까지 세계적으로 대장금 한류열풍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아직도 양미경 하면 한상공이 생각날 정도로 인생의 길이 남을 역작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당시 연출자였던 이병훈 PD는 한상궁의 캐스팅 과정에서 많은 애를 먹었는데, 캐스팅 초기에 원하는 사람이 안되면 걱정하다가 결국은 차선을 찾기도 하고 차차선을 찾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양미경이 한상공격을 워낙 잘 소화해준 덕분에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한상궁

은 원래는 드라마 초기에 사라지는 역할이었지만,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중반까지 연장하여 출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극중 한상궁은, 소신이 강하면서도 남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성격입니다. 이러한 성격은 실제 양미경의 성격과 너무 비슷하여, 양미경은 이를 바탕으로 명품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향기를 선보이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기쁨도 잠시, 양미경은 인생에서 잊지 못할 아픔을 겪게 됩니다.

양미경의 가족 중 동생은 특별한 직업이 없

던 백수였습니다. 양미경은 동생을 사람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심정으로 매니저로 고용하게 됩니다. 출연작 계약금의 30%를 동생에게 지급하는 내용의 계약도 맺었는데, 동생은 누나 명의의 가짜 도장을 만들어 광고 출연료의 50%와 각종 연예활동 수익금이 수령 권한을 위임한다는 허위 계약서를 작성한 뒤, 그렇게 받은 활동 수익 4억 여원을 가로챘습니다.

나중에 양미경은 동생이 이러한 금품 횡령 사실을 알게 되어 결국 동생을 고소하게 됩니다. 백수 생활을 하던 동생을 사람으로 만들고 먹여살려준 누나의 뒤통수를 치고, 자신의 뒷주머니로 수억 원을 빼돌린 것입니다. 하지만 동생은 누나에게 용서를 빌며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계약을 위반해 2억 8300만원을 주지 않고 폭행까지 했다며 누나를 고소하게 됩니다.

당시 동생의 법률 대리인 변호사는, 양미경 씨와 그의 언니가 동생 가족을 폭행하고, 전속계약 관련 수익금을 회사에 알리지 않고 횡령하여 고소당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양미경과 양미경의 부모도 하는 수 없이, 횡령과 폭행 등의 혐의로 동생과 아들을 상대로 맞고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동생은 자신의 범죄로 가족들을 모두 진흙탕

법전 분쟁으로 몰아넣게 되었습니다. 서울 남부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판사는 누나의 출연료를 횡령하고, 부모와 가족들에게까지 행패를 부리고도, 오히려 누나를 무고하는 등 죄질이 안 좋다며, 업무상 횡령, 사문서 위조, 협박, 무고 등의 혐의로 양미경의 동생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에서 양미경이 승소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그로 인해 양미경은 자신의 효력인 동생과 다시는 못 볼 원수 지간이 되었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해를 알게 된 부끄러움에 연예계 은퇴까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양미경은 이 일이 있기 전, 원래 세상을 떠 위기 직

전까지 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양미경은 젊은 시절 KBS 드라마 조연출로 일하던 허성용 씨와 결혼했는데, 한 번은 결혼 전 양미경이 당시 스텝이었던 허성용 씨와 바람 바람 바람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극 중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는 장면을 촬영하다가 넘어져 한강물로 빠지고 말게 되었습니다. 양미경은 당시 누가 미뤘던 것도 아니고, 정말

본인의 부주의로 스스로 한강물에 빠졌던 것입니다.

순간 그녀는 "아, 이렇게 사람이 죽는 거구나" 싶었지만, 그때 지금은 남편이든 허성용 조연출이 용기있게 물에 뛰어들었고 결국 양미경을 물에서 구해주게 됩니다. 사실 양미경과 남편은 원래는 서로에게 호감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남편이 보기에 양미경은 부침성도 없고 쌀쌀맞기만한 매력 없는

여배우였고, 남편은 또 푸짐한 뱃살을 출렁거리면서 뛰어다니는 양미경이 싫어하는 살찐 스타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에 양미경은 방송국으로 가면서 보니까 남편이 참 일을 열심히 하고 성실하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이 먼저 커피 한잔 하자고 대시하여 연애를 하게 되면서 6개월 만에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인연을 만

나 아들을 낳고 가정을 꾸리게 된 양미경. 하지만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어릴 적부터 평생 그녀를 이끌어준 그녀의 아버지가 80세를 일기로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되신 것이었습니다. 불편한 몸을 무릅쓰고 가장으로서 모범을 보인 아버지. 양미경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런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어왔는데요. 전

쟁에서 중상을 당하신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신인시절 연기 경험이 없어 수도 없이 대사를 외우며 결국 명품 연기자로 거듭났지만, 드라마 촬영 중 불의의 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위기를 넘기기도 했었고. 그러다 동생을 챙겨

주겠다고 매니저로 고용까지 해줬지만, 가족들의 진흙탕 법정 싸움으로 끝나버리며 연예계 은퇴까지 고민해야만 했던 양미경의 힘겨웠던 인생. 이렇게 너무나 안타까운 인생을 살아온 배우 양미경에게 시청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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