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록은 1985년 배우 이미영과 결혼하여, 잉여의 자녀를 두었으나 결혼 12년 만인 1997년 이혼했습니다. 그 후 1999년, 자신의 오랜 팬으로 알려진 16살 연하의 임주연 씨와 재혼해 이남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전영록은 아버지는 대배우 항해, 어머니는 인기가수 백설희입니다. 전영록은 영화로 데뷔했을 때, 부모님이 누구인지 감독들마저 몰랐다고 합니다. 전영록은 "내가 초등학교 때는 아이들이 손가락질했다. 영화를 보고는 '너희 아버지가 죽였다'고 하더라. 어떨 때는 아버지가 군인으로, 악역으로, 형사로 나왔다. 초등학교 때는 싸움만 했다. 중학교에는 삼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일부러 숨겼다. 싫었다. 그게 후회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영록의 부모님은 전영록이 연예인이 되는 것을
반대하셨지만, "너 하다가 관둔다는 소리 하지 마라. 이걸 업으로 삼았다면 끝까지 가라"고 말하셨다고 합니다.
전영록의 아버지 황해는 1939년 연극배우와 가수로 데뷔했으며, 222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다가 2005년 지병인 당뇨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 백설희는 "봄날은 간다", "물새우는 강 언덕이" 등의 명곡을 남겼으며, 201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영록은 1971년 기독교 방송인 영페스티벌로 첫 방송을 하였으며, 1973년 MBC 드라마 "제3교실"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드라마 삽입곡 "편지"를 부른 것을 계기로 1975년 가수로 본격 데뷔하여, "종이학",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등을 히트시키면서 1986년과 1987년 2년 연속 KBS 가요대상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전영록은 싱어송라이터로 자신의 노래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작사, 작곡하여 히트곡을 만들어내면서 다시 한 번 정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곡으로는 김지애의 "얄미운 사람",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배우 김희애가 불렀던 "날을 잊지 말아요" 등이 있습니다. 특히 "바람아 멈추어다오"는 가요톱10, 골든 컵, 그리고 MBC 가요대제전에서 10대 가수가 되었으며,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와 "얄미운 사람"은 두 곡 모두 1989년에 발표된 곡입니다.
전영록은 배우와 가수, 작곡가로서 크게 성공하며 톱스타의 자리에
있을 당시에 배우 이미영과 1985년 결혼식을 올리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두 사람은 1983년 영화 "대학 신입생 오달자의 봄"에 함께 출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연인으로 발전했으며, 이미영은 배우로서 막 성공하려던 시기로 더욱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미영은 1978년 만 17세 때 4000대 1의 경쟁을 뚫고 미스에트 대상을 수상하고, 1979년 MBC 1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며, 1980년 MBC 드라마 "사랑의 계절"에서 분량소녀 역을 맡아 주목을 받은 후, 다수의 작품에서 반항적인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결혼 당시 전영록은 31살, 이미영은 24살이었으며 이후 1986년 큰 딸 전보람, 1987년에는 전우람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미영과 전영록은 결혼 12년을 보낸 후, 1997년 이혼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후 2년 후인 1999년에는, 자신의 팬이었던 16살 연하인 임주연 씨와 재혼을 했습니다. 이미영은 인생다큐 마유에서 전영록과의 이혼사유를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이혼할 때, 도박했다 바람을 폈다 사업에 실패했다 등 다양한 말들이 있었지만, 사실을 사랑을 하면 모든 걸 다 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깨졌을 때는 모든 걸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는거다. 서로 간의 사랑이 깨진 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영록은 이미영과 이혼 후 부산에서 부산교통방송 DJ로 활동했으며, 부산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할 당시 현재 아내인 임주연 씨를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방송 아궁이에 따르면, 임주연 씨는 전용록의 오랜 팬으로, 부산까지 직접 찾아가 전영록에서 사랑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16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했으며, 재혼 당시 전영록은 처자식 다 버리고 젊은 여자와 만나려고 부산으로 내려왔다는 루머에 시달리며 수박 껍질 세례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영록은 2013년에는 대장암에 직면했던 암 투병 사실을 고백한 바 있으며, 현재는 건강을 회복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미영과 전영록의 큰딸 전보람은 1986년생으로, 2008년에 솔로 가수로 데뷔한 후, 2009년에 그룹 티아라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2017년 팀을 탈퇴 이후 배우로 전향하였다고 합니다. 둘째 딸 전우람은 2012년에 디오니세 멤버 RA m으로 데뷔 이후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고 합니다.
가수 전영록이 부모님이 연예활동을 반대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OBS 독특한 연예 뉴스가 데뷔 50주년을 맞아 더 바쁘고 뜻깊은 요즘, 일상부터 파란만장한 인생사까지, 가수 전영록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소하게 얘기해서 들여다봤습니다.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 전영록, 그의 첫걸음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황해 백설이라는 대스타 부모를 둔 연예계 로열 패밀리 일원이었음에도, 연애 활동을 반기지 않았던 부모님으로 인해 홀로 사투를 벌인 그다 전영록은 연예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더니 "부모님이 대물림은 없다며 반대하셨다. 근데 끼라는 거는 부려야 되는데, 끼를 나눌 장소도 없고 그래서 몰래 다운다운으로 가서 오디션을 봤다. 유명하신 선배님들이 펑크가 나면 메꿔주고 노래해주는거다. 근데 가까운 지인이 아버지한테 고자질하는 바람에 걸려 집에 끌려갔는데, 아버지가 '잘해봐 딱 한마디'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근데 가수 생활 열심히 하다보면 아버지가
'연기는 언제 하니' 하셔서 영화를 열심히 했다. 돌아이 시리즈를 했더니 어머니가 '가수가 노래를 해야지' 하시는거다. 정말 진퇴양난이었다. 그래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잘해봐' 소리하신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잘했다라고 한 번도 안 해주셨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냥 요즘은 쉬운 말로 얘기하자면 그냥 비난을 받았다는 이야기야. 다시 태어나도 연예인이 되겠다면 배경이 그럴 가능성이 높아서 또 그럴 거야. 배경이 너무 중요하다는 말도 붙이고 싶어. 적극적인 지원은 없었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재능과 남다른 열정으로 맹활약했던 지난날 8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 스타로,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로 뜨거운 인기를 누린 적도 있었어. 인기가 그치지 않고 50년을 롱런 중인 진짜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 전영록은 예전에 부모님들이 "성실해야 된다. 근면해야 된다. 착해야 된다"라고 하시며 인성을 길러주셨어. 제가 한 50년 활동을 하다 보니까, "연습 많이 해라. 예습. 복습. 연습만이 살 길이겠다"라고 얘기해 주셨어. 그래야 공부도 되고 멈춤이 없다고도 말씀하셨어. 많은 걸 잃었지만, 잠시도 방심하지 않은 인생. 늘 꿈꾸고 도전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전영록은 요즘 개인 방송에 푹 빠졌어. 진심으로 소통하며 동시대를 걸어온 팬들에겐 향수를, 인생의 후배들에게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 전영록은 개인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노래를 까먹을까 봐"였대. 그냥 노래가 안되면 치매라고 생각했어. 성대 치매에 걸리며 노래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도 했었어. 솔직히 망신이었어. 코로나가 터지니까 노래할 곳이 없어진 거야. 자꾸 방송국에서는 7080이 없어지고, 그래서 무조건 개인 방송해야지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도전 천국에 출연했어. 저 나름대로 편곡을 해서 아주 좋았어. 커버 공연을 많이 하려고 했는데 폐활량이 많이 늘었다고 전해졌어.
처음에는 떨리고 혼자 내 노래만 부르면 되는 건가 정말 무서웠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 래퍼토리가 적으면 못하겠거든. 똑같은 건 질리니까 매일 바꿔줘야 되니까 할 일이 많아. 각 지방에서 초청받고 있어. 바후부터 가요까지 라이브로 직접 해주니까 굉장히 좋아하신다. 그래서 지금 원정 다니고 있다. 또 음악을 안 할 때는 팝아트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꿈이 있는 한 그의 삶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 청춘이지 않을까요? 과연 그런 그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데, 전영록은 목표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 하고 있는 거를 내생에 끝마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못한다. 차근차근 해 나가야 된다. 제가 하고 싶은 음악적인 교류를 하면서 목표가 설정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정말로 간절히 바란다면 올해 50주년이 됐으니까 100주년까지만 하는 거다. 저는 다른 건 없다. 이웃집 아저씨 같고 이웃집 오빠 같고 이웃집 형님 같고, 그렇게 기억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이들과 함께 싱어송라이터로 기억해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다고 바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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